
감독 : 폴 그린그래스
종이에 활자로 인쇄되어있는 묶음. 그걸 우린 책이라고 부른다.
책을 읽었을때 누가 '그 책어때?' 하면 흔히 '재밌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책이 내 맘에 들었다고 해서 '재미'라고 표현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중학교때 읽은 [퇴마록]은 정말 캡! 재미있었다. [영웅문]? 말할것도 없다. 세상에 이보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었을까. 하지만, 비소설류의 인문계열책이나, 종교서적등을 읽었을때 '재미'는 조금 의미가 달라지고, 내 인생의 책은 이것!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그건 '재미'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왜? '재미'라는 말이 내가 느낀것에 비해 '가볍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영화도 많은 영화가 있다.
시간때우기용 영화가 있는 가 하면, 천만관객을 동원하는 블럭버스터영화, 오락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전설이 되어버린 히치곡의 작품같은 고전영화나 호러, 액션, SF, 스릴러, 코메디, 로멘스 등 셀 수도 없는 종류의 영화가 있다.
이 모든 영화는 그 의미가 어떻든 '재미'를 위해 만들어지고, 재미를 위해 관람한다.
하지만 '재미'라는 말을 붙이기가 무언가 어색한 영화들이 가끔있다. 그건 실화, 그중에서도 비극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플라이트 93. 이영화도 그런영화다.
911테러 (테러라...)때, 하이잭 당했던 비행기중 유일하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비행기. United 93. 그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을 당시 승객들과 통화한 가족의 증언, 당시 상황증거, 미국방부의 자료, 미항공국 자료등을 토대로 재현된 '가상재현' 영화다.
물론 루즈체인지 라는 충격적인 동일사건에 대한 다른 시각의 영화를 접한 사람이 라면 이 영화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 도 있다. 실제로 네이버 영화덧글에는 다음과 같은 덧글도 있다.
-마치 실화처럼 만들었으나...루즈 체인지 가 더 믿음이감.
-자기네국민 죽이고 이런 거짓말 영화까지.. 허참..
하지만, 이 영화의 몇가지 특징을 집어서 영화에 대한 변명을 조금 해본다.
1. 이영화는 하찮은 아랍인들에 의해 숭고하게 희생된 미국인을 기리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 전체에서 모든 정치적, 종교적 배경은 제거된다.
영화에선 아랍인과 미국인이 나오고, 주기도문과 코란(적절한 표현을 모르겠다..)을 외우지만, 그건 어떤 목적한 의도를 나타내기 위한 '설정'이라기 보다는 단지 그 당시 극한 상황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테러범들도 그저 그들의 경전만을 외운다. 그것도 광신도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두려움을 쫓기 위해 경전을 외운다.
물론 모두가 아는 사건이니 그런것이기도 하지만, 그 흔한 알카에다나 빈라덴으로부터의 '지령씬'하나 없다.
미정부, 군부, 대통령, 항공국, 승객, 테러범 모두가 그저 그 지옥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2. 같은 이야기인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미국인'이 아니라 '승객과 테러범'이다.
몇몇 분들이 선입견 때문에 핀트를 조금 놓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아랍인(이라크인이라고 쓸뻔했다 망할.. ㅡ ㅡa) 테러범들과 승객들은 동등하다.
물론 그런 일을 벌린 테러범의 죄가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감독은 굳이 테러범들을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테러범 4명은 영화전체에서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어떠한 정치적 구호도, 악인으로서 모습,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두려움 속에 그 일을 진행하고, 마지막엔 승객들과 같이 그 '공포'를 잊기 위해 자신의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흔히 헐리우드 오락영화에 나오는 테러범처럼 배후조직에 대한 언급도, 광신도적인 눈 부라림(?)도, 맹목적 신념도 없다. 그저 그들에게도 승객과 동일하게 '공포'만이 있다.
후반부 승객들의 대항을 보고, 미국식 영웅주위와 연관시키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테러범과 반대편에서 그저 소시민들의 생명을 지키기위한 투쟁일 뿐이다.
3. 이 영화는 당시 미국인(당시 미영토안에 있던 국민)이 무얼 느꼈는지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있다.
평소 영화에서 보여주시던 훌륭한 리더십도, 전광석화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부도, 그런 상황에 영웅처럼 나타나 사태를 수습하는 숨은 영웅도 없다.
그저 무언가를 계속하고, 수 없는 대책과 수습책을 내놓지만, 그 일사분란한 모든 움직임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래도 계속 움직인다. 하지만 결과는 같아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플라이트 93은 당시 미국민의 심정을 100% 담아냈다. 패닉. 그 자체다.
4. 자 그러면.. '그래서 씨발! 지들이 피해자라는거자나!' 라고 생각한다면, 뭐, 그것도 사람마다 관람느낌은 다를 수 있는거니까, 인정하겠다. 나보다 좀더 정치적인 색이 분명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911테러(음.. 테러.. 음..)이후 부시정부에 의해 행해진 모든 사태에도 불구하고, 그때 목숨을 잃은 모든 사람은 정말 '무고한 피해자'였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난 이 영화에 대한 '지루하다. 영웅주의, 끝만 좀 재밌었다. 최악. 다 거짓말!'등의 부정적 표현만이 아니라. '강추!, 진짜재밌음. 시간가는줄 몰랐음'등의 긍정적 표현도 거북하다.
내가 순진한건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는 '재미'적 요소를 찾아서는 안되는 정말 추모 영화다.
(아직 못봤지만 올리버 스톤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좀더 오락적으로 보인다. 내 예상이 맞다면 그 영화는 얼마나 숭고하게 잘 만들었냐와 관계없이 오락영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어떤 영화잡지평을 보니 '지독하게 건조하다.'라는 표현을 썼던데, 정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영화전체에서 이성을 잃지 않은건 감독뿐이다.
나도 루스체인지를 보았고, 충분히 있을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911사태(그래.. 이게 낫다..)는 케네디 암살처럼 십수년을 두고 화두에 오를거다. 아마 좀있으면 용의자로 외계인도 나오겠지. 하지만, 당시 참사로, 또 그 이후 아프카티스탄, 이라크의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의 희생이 그 진실탐구( 진짜 범인을 밝히려는..)뒤로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론 이런 희생자 자체에 집중한 지독히도 건조한 이런 영화가 그런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줄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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